D+35 첫 한달 마무리

발표

 

일주일 전, 팀장님으로부터 지시가 떨어졌다.

입사 동기와 함께 한 달 동안의 업무를 정리해 실원분들과 실장님 앞에서 발표하라는 내용이었다.

 

첫 발표 자료를 만드느라 3일이 걸렸다.

슬라이드는 고작 10장이었지만, 그 10장을 만들기 위해 꼬박 3일을 써야 했다.

 

그리고 결과물은… 솔직히 말해 엉망이었다.

슬라이드를 본 모든 실원분들이 말이 없었다.

왜냐하면, 글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림도 섞어 보라”는 피드백을 받고, 이번엔 그림만 있는 슬라이드로 다시 만들었다.

하지만 팀장님과 사수님의 눈빛은 또 한 번 길을 잃었다.

 

이후, 슬라이드를 하나하나 보며 문제점과 개선 방안을 구체적으로 짚어주셨다.

주요 문제는 다음과 같았다.

레이아웃

강조점 부족

지나치게 구체적인 설명

 

솔직히 말해, 창피했다.

 

학부생 시절에는 실험 위주의 발표가 많아 슬라이드 구성에 큰 고민 없이도 잘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학부생도 아니고, 전공 분야도 자연계가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PM이라는 직무를 내 의지로 선택했다는 점에서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주말 출근까지 자청하며 동기와 함께 발표 준비를 했다.

동기는 이미 본인의 발표 준비를 마친 상태였지만, 자신의 시간 중 1/3을 내 발표를 위해 써줬다.

 

동기야, 정말 고마워.

그냥 너 할 일 해도 괜찮았을 텐데…

 

발표 당일, 시작 5분 전까지 PPT를 수정하다 결국 대본 없이 무작정 발표에 들어갔다.

다행히 내가 직접 기획한 내용이었기에 많이 꼬이긴 했지만 설명은 할 수 있었다.

(그래도, 대본을 미리 준비했다면 더 수월하고 직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을 거란 아쉬움은 남는다.)

 

발표가 끝난 뒤, 팀장님과 동기의 사수님(D님)이 수고했다며 아이스크림을 사주셨다.

그 아이스크림,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진짜 맛있는 맛이었다.

 

업무 변경

 

발표가 끝난 뒤, 내 업무에 변경이 생겼다는 전달을 받았다.

회사 내부 프로젝트에 인력이 필요해진 것이다.

 

막 PM 일을 시작한 입장에서, 다양한 경험은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했다.

배울수록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으니까.

 

첫 달은 UI/UX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팀장님의 과거 기획서를 참고하며 몇 번씩 갈아엎으며 작업했다.

 

첫 리뷰 때는 정말 덜덜 떨었다.

개발자분들 앞에서 설명도 해야 했는데, 당시에는 ‘쿠쿠다스’를 넘어서 ‘쿠쿠가루’ 수준이 됐다.

하지만 그 경험 덕분에, 다음 기획 때는 어떻게 미리 보호 장비(?)를 차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오늘 퇴근 전에는 업무 수행을 위한 목표와 액션 플랜을 먼저 짜는 습관을 들였다.

기존에는 중간 정리 없이 진행하다 보니 개발자분들에게 설명할 때마다 벽에 부딪혔다.

할 일은 많고 시간은 부족하니, 중요한 내용을 항상 기억하는 것도 어려웠다.

 

그래서 이제는 기억보다 기록에 집중하게 됐다.

예전엔 블로그 글처럼 노트를 작성했지만, 막상 다시 보면 뭐가 중요한지 알 수 없었다.

지금은 단순하게, 목표 / 산출물 / 액션 플랜만 정리하고 있다.

 

회고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을까?

 

한 달을 되돌아보면 정말 방황도 많았고, 눈치를 많이 봤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너무 잘하려고 애썼다.

 

지금은 배우는 단계이기 때문에 잘하지 못하는 게 당연한데도,

잘 못하는 나 자신에게 고민이 많았다.

 

그때 팀장님이 조언해주셨다.

 

“고민을 너무 많이 하고 있어.

실행 먼저 하고, 피드백을 받는 게 훨씬 빠르게 성장하는 방법이야.”

 

또, PM은 전문성과는 다른 길에 있다고 하셨다.

PM은 깊이보다 넓고 얕은 이해를 바탕으로 다양한 사람을 조율하는 역할이다.

물론 깊이를 만드는 건 좋지만, 그것이 업무에 방해가 된다면 과감히 내려놓을 필요도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조언.

 

“용어를 아는 건 중요하지만,

연구원처럼 상대에게 용어 중심으로 설명해서는 안 돼.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일이지.”

 

정말 맞는 말이다.

상대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설명하면, 그건 전달이 아니라 독백이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포지셔닝 할 것인가?

 

요즘 ‘무빙워터’님이라는 분의 콘텐츠를 즐겨본다.

그분은 직장인에게 있어서 회사 내 포지셔닝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포지셔닝’이란, 회사에서의 나에 대한 이미지다.

예를 들어, 데이터 잘하는 사람, 영어 잘하는 사람, 행사 잘 준비하는 사람 등.

 

팀장님께 여쭤보니, 내 경우는 이력서에 적은 데이터 프로젝트가 인상 깊었다고 하셨다.

동기는 이벤트 쪽에 강점이 있다고 하셨는데,

개인적으로 봤을 땐 그냥 뭘 해도 잘하는 재능러 같다.

 

이 포지셔닝에서 중요한 건, 남들과 겹치지 않는 포지션을 만드는 것이다.

겹치면 경쟁이 되고, 결국 피곤해진다.

남들이 잘 하지 않거나, 안 하는 영역을 찾아 내 것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나만의 포지션이고,

그 분야의 핵심 인재가 되는 것이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