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마무리, 그리고 새해 준비
올해는 유난히 다이나믹한 해였다.
첫 취업, 팀 변경, 앞으로 이 진로를 계속 가져가도 되는지에 대한 고민, 그리고 할머니의 소천까지.
성인이 된 지는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사회인으로서의 첫걸음은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느낀 건, 나이라는 건 정말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
나보다 어린데도 생각이 깊고 지혜로운 동기들을 보며, 반대로 어리숙한 내 모습을 마주할 때가 많았다. 그러면서 점점 확신하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환경적으로 굉장히 축복받아 있다는 것을.
주변에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은 처음엔 위축되게 만들었지만, 곧 생각이 바뀌었다. 이들을 따라가기만 해도 성장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환경은 생각보다 훨씬 강력하다.
올해 또 하나 크게 느낀 점은, 인생은 결국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하는 척’은 어느 정도까지는 나를 끌고 갈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언젠가 반드시 드러난다. 내가 말한 것을 실제로 지킬 수 있을 때, 그때가 비로소 실력이다.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말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덜 말해서도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인정하는 과정은 감정적으로도, 이성적으로도 굉장히 어렵다. 하지만 인정이 되어야 성장이 시작된다. 부족함을 인정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소천은 삶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 사건이었다.
나는 어릴 때 할머니 댁에서 약 3년 정도를 살았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의 첫 1년, 그리고 가족이 이사한 뒤 부산에서 학교를 다녀야 했던 2년. 그 시간 동안 나는 할머니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그랬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사랑을 제대로 느끼고 있지는 않았다. 피상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돌아가시고 나서야, 그때 혼냈던 것들, 먹을 것을 챙겨주던 모든 행동이 전부 사랑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홀로서기를 하면서 깨닫는 건, 사랑은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사람은 모두 각자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고, 누군가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인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정신력과 체력을 요구한다. 가족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할머니를 보내드리며 생각했다.
이제는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의식적으로 더 많은 시간을 써야겠다고.
우리는 결국 언젠가 죽는다. 그렇다면 그 시간만큼은 소중한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더 함께 보내는 게 중요하다.
내 20대는 굉장히 요동쳤고, 30대가 되어 첫 취업을 하기 전까지도 마찬가지였다. 확실한 건 하나다. 삶은 단 한 번도 뜻대로 흘러간 적이 없었다.
입시도, 대학 생활도, 고시 준비도, IT로 방향을 튼 과정도 모두 그랬다.
그럼에도 매 순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원하는 결과는 아니었지만 예상하지 못한 선택지들은 계속 열렸다.
대학생 때 동아리를 했던 경험은 고시를 준비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고시에 대한 마음을 접었을 때는 IT를 시작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IT를 시작했을 때는 마침 AI가 급격히 도입되던 시기라 개발자에 대한 허들은 매우 높아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덕분에 지금의 직무로 올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지나고 보니,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순간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몰입하기로 결정한 이후부터는 이상하게도 일이 풀리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이 열렸다.
물론 휴리스틱일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렇게 믿고 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반드시 내가 원하는 결과를 가져다주지는 않더라도, 내 노력에 반응하는 문 하나쯤은 반드시 열어준다고. 그리고 그 문은 늘, 내가 맡은 역할에 충실할 때 열렸다.
2025년은 실력은 아직 부족하지만, 심리적으로는 많은 변화가 있었던 해였다.
이제 2026년에는 전문가로서 한 단계 더 성장하고 싶다. 그래서 스스로 몇 가지 목표를 정했다.
1. 대학원 진학
PM은 비즈니스, 기술, 고객을 모두 이해해야 하는 직무다.
비즈니스와 고객은 현업에 있기 때문에 경험을 통해 필요한 것들을 찾아갈 수 있다. 하지만 기술은 다르다.
전공 공부를 할 때도 느꼈지만, 이공계 영역은 독학이 불가능하지는 않아도 무엇이 중요한지 판단할 눈을 갖기 어렵다. 특히 실무 엔지니어가 아닌 이상 더 그렇다.
개인적으로는 CS를 제대로 공부하고, 엔지니어들과 막힘 없이 대화할 수 있는 수준까지 가고 싶다.
2. 현금흐름 구축
사회인 첫해에는 돈을 쓰는 데 급했다. 다행히 지금은 내가 심리적으로 만족하는 소비와 그렇지 않은 소비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결혼 준비도 해야 하고, 대학원을 위한 자금도 마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비와 투자를 더 지혜롭게 설계해야 한다. 나만의 금융 프레임워크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3. 취향 파악하기
동기들을 보며 느낀 건, 모두 각자의 호불호—즉 취향이 분명하다는 점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태도로 살아왔는데, 돌이켜보면 그건 나에 대한 무지였다.
분명 나에게도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있다. 다만 아직 모를 뿐이다.
2026년에는 내 취향을 적극적으로 탐색해보려고 한다. 새로운 메뉴도 시도해보고, 안 가본 곳도 가보고, 회사 밖 사람들도 만나며 시야와 경험을 넓히고 싶다.